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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엄마, 나 왜 버렸어?"제 이름은 박지나였고 세상 사람들은 저를 이름 대신 '고아'라고 불렀어요.
생후 3개월 때 보육시설에 보내졌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 어릴 적 모습이 담긴 사진조차도 부모의 흔적은 없습니다.
외롭지는 않았어요. 엄마가 없는 저에게 어린이집 원장님이나 선생님, 저처럼 부모님이 없는 친구가 가족이 되어 주었습니다.
쟤 어린이집 출신이래. "엄마, 아빠가 안 계셔서 그렇대
더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설렘으로 가득했던 첫 외계는 오히려 편견으로 저를 가리켰습니다.
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... 믿었던 친구들조차 나를 따돌리고 놀렸고 그렇게 몇 년씩 썩은 상처는 뇌전증이라는 병으로 악화됐습니다. 계속되는 발작과 몸에 직접 상처가 날 정도의 불안감으로 결국 저는 학업을 중단했습니다.
그리고 어린이집 중도 퇴소 결정
시설에 있으면서도 학업을 중단하고 병원을 전전하던 저는 남들보다 1년 빠른 만 17세에 자립 정착금도 없이 홀로서기를 시작했습니다.
찌그러지고 이빨보다 아팠던 건 사는 법을 가르쳐줄 어른이 없다는 현실이었어요.
일주일 또는 2주일... 잦은 발작으로 깨문 치아와 잇몸은 주저앉고 손등에 상처는 선명해졌어요.
대인 기피까지 생겨버린 저는 사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정부가 지원해 준 주택과 기초생활수급비에 의지해 하루 한 달을 버텼지만, 그나마 지인들의 사기로 다 잃었고,
보호자도 돈도 없고 응급실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간신히 목숨을 바쳐 온 의지마저 약해져 갔습니다.무엇보다도... 잦은 고통 뒤에 눈을 떴을 때 곁에 아무도 없는 현실은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.
그렇게 세상에 던져졌다고 생각했을 때, 저와 같은 아이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센터에서 기적 같은 인연을 만났습니다.
우리는 곧 마음을 나누는 가족이 됐어요. 무심코 지나가던 생일도,발작으로 괴로워하다 눈을 뜨는 순간도,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.
꿈도 가지게 되었습니다. 사회복지사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21살 신입생이 되기로 결심했어요.홀로서기를 해도 의지할 어른은 꼭 필요합니다.저는 저 같은 친구에게 그런 어른이 되어주고 싶어요.
엄마, 세상에 태어나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요."
그러다 겨우 2년 전쯤에 어떻게 이 세상이 혼자 살아가게 되었는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.15살, 어리고 여린 몸으로 나를 가졌던 어머니.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대신 나를 택한 어머니...
이제는 어머니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려고 합니다. 용감하게 제 꿈을 향해 나아갈 겁니다.
아직 두렵고 떨리지만 저는 엄마의 마지막 희망이자 꿈입니다.
사랑해요 엄마. 엄마.
만 18세, '법적 성인'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보호종료 아동은 약 500만원의 자립정착금과 3년간 지급되는 30만원의 자립수당만으로 불안정한 주거와 고용 등 암담한 현실 속에서 준비하지 못한 채 홀로 살아가야 합니다.
겨우 한 살, 보살핌이 필요했던 어린 아이는 이제 21살, 크고 멋진 꿈을 꾸는 청년이 되었습니다.
지나가 그동안의 아픔을 치료하고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.